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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은 왜 주호영·이진숙을 잘라냈을까? [런치정치]

2026-04-01 13:54 정치

 이정현 전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 (출처 : 뉴스1)
"거대한 얼음 덩어리를 깨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지난 달 22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3층에서 열린 공천관리위원회 비공개 회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공천배제) 문제를 두고 3시간 넘게 이어진 마라톤 회의 막바지에 이정현 전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이 이런 질문을 공관위원들에게 던졌다고 합니다. "톱으로 자를까요, 아니면 망치로 부숴야 할까요? 저같으면 아주 가느다란 바늘을 대고 그대로 내리 칠겁니다. 그게 정수(精髓)입니다. 대구입니다."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어제(지난달 31일) 전격 사퇴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지방선거 시·도지사 공천이 대부분 마무리 됐다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공천 배제) 등 공천 잡음이 계속되면서, 당에 더이상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판단이라는 게 당내 중론입니다. 당 지도부나 이 전 위원장 모두 '출구 전략'이 필요했다는 겁니다.

이번 '이정현 공관위' 공천에서 가장 큰 논란은 단연 주호영 의원과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 컷오프였습니다. 당사자는 물론 당내에서도 "명분과 기준이 없다" "이유가 설명이 안 된다"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당 일각에선 친박(박근혜) 핵심이었던 이 전 위원장이 오랜 구원(舊怨)인 친이(이명박)계 주 의원을 잘라내기 위해 이진숙 전 위원장은 끼워넣었을 뿐이라는 얘기까지 나왔습니다. 이진숙 전 위원장은 결국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전략 공천해 챙겨줄 거란 겁니다. 이 전 원장은 정말로 20년 만의 '친박 학살' 복수극을 그렸던 걸까요?

이정현 "대구 공천이 내 존재 이유"

이 전 위원장은 공관위원장을 맡은 직후부터 측근에게 "대구 공천이 내 존재 이유"라고 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번 지방선거, 이재명 정권 출범 1년 만에 치러지죠.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대를 웃돌고, 국민의힘은 계엄 사과, 절윤(윤석열) 논란으로 끝없는 내분에 허덕이던 때였습니다.

이 전 위원장은 국민의힘이 '텃밭' 대구에서 혁신 공천을 하지 않고서는 변화를 말할 수 없다는 생각이 확고했다고 합니다. 중진 전원 컷오프 정도의 충격 요법은 줘야 국민들이 국민의힘을 뒤돌아본다는 겁니다. 절윤 논란에서 벗어나 선거 모드로 전환하기 위해선 기존의 판을 뒤흔드는 공천이 돼야한다는 게 이 전 위원장의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왼쪽)과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 (출처 : 뉴스1)
보수 정당 내 최대 기득권 집단인 대구에서 "'대마불사'(大馬不死·바둑에서, 큰 집단의 돌이 쉽게 죽지 않는다)가 불가능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의지도 강했다고 합니다. 국민의힘이 앞으로도 총선 공천 등에서 세대교체, 시대교체를 하기 위해선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을 것 같았던 대마도 손을 댈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기겠다는 겁니다.

반발은 거셌습니다. 이 전 위원장이 지난달 13일 공관위원장직을 돌연 사퇴했을 정도로 공관위 내에서도 이 전 위원장의 '중진 컷오프' 주장에 반대 의견이 강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후 장 대표가 '전권'을 주겠다며 다시 이 전 위원장을 모셔왔지만, 대구 의원들의 계속된 비토(반대 의견)에 지역 민심이 흔들리는 기류까지 감지됐습니다.

지도부 내에서도 위기감이 강했습니다. 당의 한 인사는 "대구 선거에서 만약 엉뚱한 결과가 나온다면, 그땐 정말로 끝장"이라고 했습니다.

'혁신' 명분과 '현역 반발' 현실 사이 절충

결국 장 대표는 고심 끝에 주말인 지난달 22일 대구로 달려갔습니다. 장 대표는 대구 의원들에게 "시민 공천", 즉 완전 경선을 붙이겠다고 공언했으나, 이날 저녁 이 전 위원장의 선택은 주호영, 이진숙 두 사람에 대한 컷오프였습니다.

당시 이 전 위원장이 내세운 이유는 지금 낙후된 대구에 필요한 건 정치보다는 '경제'라는 것이었습니다. 기업 CEO 출신인 초선 최은석 의원, 경제부총리를 지낸 정통 경제 관료 출신의 3선 추경호 의원 등 후보들의 경험을 높이 평가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됐습니다. 이 전 위원장은 "주호영·이진숙 후보는 이미 각자의 영역에서 대한민국 정치의 중심을 지켜온 분들"이라며 "두 분의 역할이 대구시장이란 단일 직위에 머물기보다 국회와 국가 정치 전반에서 더 크게 쓰이는 것이 대한민국 전체를 위해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했습니다.

주호영·이진숙 컷오프는 이 전 위원장의 절충안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전 위원장이 내세웠던 혁신 공천의 명분을 잃지 않는 선에서, 당초 밀어붙이려 했던 중진 전원 컷오프보다는 현역 의원들과 지역민의 반발을 줄이는 방법을 택했다는 겁니다. 실제 공관위 결정 이후 대구 의원들 가운데 권영진 의원을 제외하고는 반대 목소리가 강하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여기엔 당 일각의 '이진숙 비토 정서'가 작용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이진숙 전 위원장이 강성 지지층에게 지지를 받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지역에서는 우려도 있다"고 했습니다. '이 전 위원장으로 민주당 김부겸 전 총리를 이길 수 있나', 그리고 '대구시장이 된다고 하더라도 투사 이미지인 이 전 위원장이 이재명 정부를 상대로 지역 예산 등을 제대로 챙길 수 있겠나'라는 여론이 일부 있다는 겁니다.

이정현 전 위원장의 결정을 두고 당내에선 "기준이 없다" "중구난방"이란 비판도 상당했는데요. 대구와 충북(현역 김영환 지사)은 컷오프하면서 경북은 이철우 지사를 남겼죠. 또 부산은 현역인 박형준 시장을 자르고 주진우 의원을 세우려 했다가 반발에 부딪혀 다시 물러섰다는 겁니다. 이런 지적에 대해 이 전 위원장은 현역 경쟁력, 후보군의 면면 등 지역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 기준을 적용할 순 없다는 생각이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한 의원은 "모든 일엔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대구만 컷오프한다는 게 납득이 안 되니 혼란이 계속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의원은 "내정설이 있었던 최은석 의원(대구시장), 김수민 전 의원(충북지사), 주진우 의원(부산시장)이 본선 경쟁력에서 최선의 카드인지 의문"이라고 했습니다. 혁신 공천보다 중요한 건 이기는 공천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죽을 각오로 결정…장 대표 생각하면 짠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오른쪽)과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 (출처 : 뉴스1)
이 전 위원장도 대구 컷오프 과정에서 심한 압박감을 느낀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 전 위원장은 측근에게 "죽을 각오로 결정했다"고 했다고 하는데요. 여론조사상 대구시장 후보군 가운데 상위권을 차지하는 두 사람을 컷오프하면서 당사자 반발이 심할 것이라는 걸 이 전 위원장도 예상했겠죠. 이 전 위원장은 컷오프 발표 직후 "나는 이제 오늘 집에 가도 된다", "내 할 일 다했다"고 했다고 합니다.

이 전 위원장과 장 대표가 사전 교감했는지도 당내 관심사 중 하나였습니다. 양측 말을 종합하면, 두 사람은 공천 과정에서 연락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장 대표에게 공관위원장직을 제안받을 때부터 이 전 위원장은 "보고하지 않겠다"고 했고, 장 대표도 이를 흔쾌히 수락했다고 합니다. 이 전 위원장은 대구 공천 논란 과정에서 측근에게 "내가 욕 먹는 것, 다른 건 다 괜찮은데 장 대표만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짠하다"고 했다고 합니다.

다만 이 전 위원장은 대구 컷오프 결정 직전에는 장 대표에게 전화해 30분 간 통화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 전 위원장의 강경한 기조에 장 대표는 결국 "알겠다"고 했다고 하는데요. 장 대표는 이날 사석에서 "마음이 힘들다"고 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 전 위원장의 혁신 공천 의지와 별개로 공천 잡음과 이에 따른 선거 결과의 불확실성, 그리고 당내 또 다른 적을 만들어야한다는 부담감은 장 대표가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주호영 가처분 '분수령'…"인용 시 오히려 수월"

대구 컷오프 파동은 이르면 오늘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주 의원 측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결과가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한 중진 의원은 "대구가 김영환 충북지사가 낸 가처분처럼 인용되면 차라리 전면 경선을 다시 붙이는 쪽으로 가는 게 수월할 것"이라며 "다만 이미 경선을 치르고 있는 후보자들의 반발은 또 다른 갈등 요소"라고 했습니다. 기각 시 주 의원이 무소속 출마를 시사한 상태이지만, 실제 출마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립니다.

대구와 충북 이외에도 관전 포인트는 있습니다. 서울과 부산, 그리고 경북에서 현역(오세훈, 박형준, 이철우)이 굳건히 자리를 지킬지, 아니면 뉴 페이스(박수민·윤희숙, 주진우, 김재원)가 새 바람을 일으킬지입니다. 여기에 이 전 위원장이 "가장 어려운 곳에서 역할을 할 것"이라며 호남 출마를 시사하기도 했는데요. 이 전 위원장의 혁신 공천 시도, 그리고 그 정수인 대구 컷오프는 유권자들의 마음에 울림을 줬을까요. "조용한 실패보다 시끄러운 혁신"(이정현 전 위원장)은 지금 국민의힘에 필요한 긴급처방이었을까요.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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