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미국의 수도죠. 워싱턴 D.C. 그 안에서도 미국의 대통령이 집무를 보는 백악관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지난 1월 20일,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식을 하고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는데, 곧 있으면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으로 돌아온 지 딱 70일이 되는 날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70일이 70초처럼 빠르게 지나갔다고 생각될 정도로, 두 달이 넘는 시간 동안 트럼프 대통령 뭔가를 계속했습니다
그만큼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노력하고 있는 거겠죠.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시작으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 그리고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과 이곳에서 정상회담을 했고요.
전 세계인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만남도 이곳 백악관에서 이뤄졌죠.
예상을 크게 빗나가지 않은 그야말로 속도전이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빠른 움직임, 이곳 워싱턴 D.C.를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제는요. 트럼프 대통령의 광폭 행보를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보며, 스스로 영향력을 드러내고 있는 트럼프 2.0의 실세들을 꼽아봤습니다.

▶ 트럼프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최연소 대변인
트럼프 대통령을 제외하고 백악관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이 누구냐, 백악관 출입 기자들은 단연 이 사람을 꼽을 것 같습니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입니다.
일단 나이부터 입이 떡 벌어집니다. 1997년 8월생, 역대 최연소 백악관 대변인입니다.
저도 백악관을 오가며 마주친 적이 있는데 일단 얼굴에 여유가 있습니다. 미국 현지에서는 레빗 대변인이 "트럼프를 잘 구사한다"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언론을 상대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과 생각을 명확하게 전달한다는 분석 같습니다.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보수 성향 언론사 폭스뉴스에서 인턴으로 일했던 레빗 대변인. 트럼프 행정부 1기인 2019년부터 백악관 대변인실 인턴을 하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연을 맺었는데요.
막바지에는 백악관 대변인 보좌관으로 일하기도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하면서 함께 백악관에서 나오게 됩니다.
곧장 뉴햄프셔주 연방 하원의원으로 출마하기 위해 공화당 경선까지 당당히 통과했는데, 불과 25살의 일입니다.
선거에서는 패배했지만, 이번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운동에 동참하기 시작했는데요.
지난해 선거 운동 기간 아이를 낳고 출산 휴가를 보내던 중,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 유세장에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를 대상으로 한 암살 미수 사건이 벌어졌죠.
그런데 여기서 결국 4일 만에 출산 휴가를 접고 캠프에 복귀합니다.
이후 대변인 자리를 꿰찬 뒤 백악관 기자실과 브리핑룸 분위기를 휘어잡는 것은 레빗 대변인에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안 그래도 백악관 브리핑룸은 기자들로 항상 꽉 차거든요.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과 심리를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은 기자들이 요즘 들어 더 몰리고 있습니다.
평소 분주한 브리핑룸과 달리 한산한 모습도 여러분이 궁금하실 텐데요. 레빗 대변인 입장에서 일종의 앞마당이라고도 할 수 있는 브리핑룸은 백악관 서쪽에 있고요. 공식 명칭은 '제임스 브래디 프레스 브리핑룸'입니다.
재미있는 게요. 앉을 수 있는 좌석은 단 49석입니다. 지정석을 두고 나름 오랜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는데요. 예를 들면, 첫 줄에는 AP통신, 다음 줄에는 뉴욕타임스 기자가 앉을 수 있는 식입니다.

레빗 대변인이 첫 브리핑에서 첫 질문을 AP통신 기자가 아닌 온라인 매체에 기회를 줬는데, 이것이 기존의 관행을 깬 결정이었습니다.
이후 레빗 대변인과 백악관이 AP통신의 보도를 문제 삼으며 취재단에서 제외하기도 했는데요. 여기 백악관 출입 기자들 사이에서는 AP를 지지한다는 문구도 이렇게 붙어있습니다.
이런 잡음들이 하나둘 쌓이면서 '기성 매체 기자들의 저승사자'라는 별명도 붙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CNN 기자가 조 바이든 전 대통령에 대해 질문을 하자 기자 스스로 직접 알아보라고 말해 논란을 빚기도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나 보수 지지자들 입장에서는 맹렬한 충성심과 정확한 메시지를 보내는 대변인이겠지만, 대규모 기성 매체들 입장에서는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트럼프의 입인 셈입니다.
▶ '골프광' 골프 친구에서 해결사로

플로리다주 골프장에서 발생했었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두 번째 암살 시도 사건, 기억나실 겁니다.
그때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골프를 쳤던 사람, 혹시 아시나요?
바로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 특사였습니다.
보통 중동 특사라고 하면 이스라엘과 하마스 분쟁 조율만 할 것 같은데, 또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중동 특사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종전 협상에도 깊숙이 개입하면서 최근 ‘푸틴 특사’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는 어떻게 대륙을 넘나들며 트럼프의 발이 될 수 있었을까요?
위트코프 특사, 사실은 측근이라는 표현으로는 조금 부족하고요. 그야말로 찐친, 40년 지기 진짜 친구입니다.
위트코프 특사와 트럼프 대통령의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부동산 재벌이라는 점입니다. 두 사람의 만남도 부동산 업무로 시작됐거든요.
1980년대 위트코프 특사가 트럼프 대통령의 부동산 거래를 맡는 법률 회사에서 변호사로 활동했습니다. 어느 날 새벽, 샌드위치 가게에 팀원들의 먹거리를 사러 갔던 위트코프가 우연히 트럼프를 만났습니다. 마침, 트럼프가 돈을 낼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위트코프가 흔쾌히 샌드위치를 결제해 줬습니다. 두 사람은 그 샌드위치가 햄치즈샌드위치라는 것을 정확하게 기억하는데, 그리고 몇 년 뒤 트럼프가 위트코프의 도움을 기억하면서 끈끈한 관계가 시작됐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샌드위치를 파는 가게를 '델리'라고 표현하는데, 말 그대로 델리에서 햄치즈 샌드위치를 대신 사준 이 인연이 미국 외교·안보의 판도를 뒤집을 수 있는 관계로 이어진 겁니다.
두 사람의 인연은 그 이후도 차곡차곡 쌓입니다. 트럼프 대통령 재선 기간, 기꺼이 후원금을 내는 든든한 후원자이기도 했고요. 트럼프 대통령이 사법 리스크로 골머리를 앓을 때 재판에서 증언을 함께 해주기도 했습니다.
단순히 낙하산이다, 인맥이다 이렇게 보는 시선도 있지만, 재미있는 것은 외교·안보 커리어가 제로인 위트코프가 성과를 만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중동 일대를 누비며 가자지구 휴전 협상을 이끌고 이스라엘 인질 석방을 끌어내기도 했죠.
협상을 위해서 예정에 없던 이스라엘 일정을 추가했는데, 이스라엘 측에서 안식일이라며 네타냐후 총리와 만남 일정을 미뤘다고 합니다. 그때 이스라엘 측에 "나는 안식일에 관심이 하나도 없다" 이렇게 압박한 일화가 대표적입니다.
결국 네타냐후 총리를 테이블에 앉혀서 휴전을 약속받은 거죠.
이런 추진력과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점 때문일까요? 한술 더 떠서 요즘에는요. 미국 외교·안보 정책을 총괄하는 루비오 국무장관의 자리도 위협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 현지에서는 "미 국무장관보다 직급은 낮을 수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권력을 개인적으로 이양받은 남자는 위트코프" 이런 말도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 트럼프의 '문고리 권력'?

트럼프 대통령, 처음 대통령에 집권했었던 트럼프 1기 때도 그렇지만 이번 2기에도 정말 열심히 서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행정명령 서명을 할 때면 트럼프 대통령 옆에 자주 등장하는 이 무뚝뚝한 남성만큼 시선을 끌기는 어려울 겁니다.
윌 샤프 백악관 문서 담당 비서관입니다.
미국 현지에서도 '신 스틸러'라는 말과 함께 도대체 누구인가 궁금증을 유발했습니다.
그 모습부터 흥미로웠는데요. 트럼프 대통령에게 어떤 내용인지를 간략하게 소개하거나 귓속말을 하곤 하는데, 그 모습이 언론의 눈에 확 띈 거죠.
특히 2기 행정부 들어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 서명식과 동시에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약식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는데, 어쩌다 보니 트럼프 2기 백악관 참모 중에서 언론 노출 비율이 꽤 높은 편입니다.

그런데 문서 담당 비서관, 다소 생소하시죠? 이 자리는 간단하게 말하면 종이를 사용하는 대통령 주변 업무를 모두 총괄하는 자리입니다. 대통령에게 전달할 메모부터 핵심 정책 브리핑, 보고서 등을 도맡는데요.
얼마 전 트럼프 대통령이 머스크 아들이 코에 묻은 이물질을 묻혔다는 이유로 집무실 책상을 바꿔 이슈가 있었는데, 이 책상을 '결단의 책상'이라고 부르거든요. 이 결단의 책상에 어떤 문서가 언제 올라갈지 결정하는 과정에도 샤프 비서관의 판단이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백악관에서 진행될 연설에서 어떤 의견을 밝힐지, 대통령과 함께 조율해서 초안을 어떻게 작성할지. 한마디로 대통령의 관심사나 평소 생각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절대 할 수 없는 업무입니다.
샤프 보좌관은 30대 후반으로 하버드 로스쿨 출신의 엘리트입니다. 2023년 10월 트럼프 대통령 법무팀에 변호인단으로 합류하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을 위해 방송이나 기고도 마다하지 않은 걸로 유명한데요.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눈에 띈 순간은 따로 있었습니다.
지난해 미주리주 법무부 장관직에 도전했다가 당내 경선에 실패했는데, 당시 선거운동 과정에서 공개했었던 영상이 화제였습니다. 유탄 발사기를 이용해 트럼프 대통령 형사사건 자료를 연상시키는 서류 더미를 불태우는 광고를 내보냈습니다.
점잖아 보이는 젊은 변호사가 자신을 지지하는 파격적인 광고를 내보내니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겠죠?
덕분에 법무부 장관직에서는 고배를 마셨지만, 백악관에 입성하여 새로운 기회를 얻은 겁니다.

다시 한번 백악관에 돌아온 트럼프의 두 번째 백악관 라이프.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뒤 80년 동안 미국이 쌓아왔던 모든 시스템을 트럼프 대통령 한 사람이 흔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미국 현지에서는 예상대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두고 ‘예측 불가’하다는 평가가 조금은 더 많은 시기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이 트럼프 1기에서 아쉬움을 갖고 있지 않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 1기에서는 풍부한 경험과 시야를 가진, 이른바 ‘어른의 축’이 트럼프 대통령의 급발진을 진정시켰다면, 자신에게 주어진 두 번째 기회에서는 자신을 원톱으로 두고 나의 결단력에 좌고우면 없이 따라올 인재를 적극적으로 내세워 더 강하고 더 나은 미국을 만들고 싶다, 이런 의지가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도 외교·안보 현장에서 트럼프 사단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만큼, 당면한 위기이자 기회의 갈림길에서 그들에 대한 혼란과 관심이 동시에 쏠리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오늘 내용 재밌으셨나요? 다음 시간에는 이곳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이야기와 그 속에 감춰진 더 깊은 이야기를 모아 찾아뵙겠습니다.
취재 : 최주현 기자
제작 : 정현지 CD
작가 : 박정빈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