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례식장, 결혼식장, 개업 축하… 누군가를 위로하고 축하할 때 '화환'을 보냅니다. 그런데 마음을 담은 화환이 알고 보니 다른 곳에 쓰이고 온 '재사용 화환'이라면 어떤 기분이신가요?
재사용 자체가 불법은 아닙니다. 다만 지난 2020년 8월, 재사용 화환이라면 따로 표시해야 하는 '재사용 화환 표시제'가 시행됐습니다. 불법으로 재사용을 하지 말고, 소비자가 알 수 있게 표시하라는 거죠.
한 해에 화환 700만 개가 사용되는 걸로 추정되지만 정확히 얼마나 불법 재사용이 되는 지 알 수 없습니다. 그만큼 단속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단속반과 청주와 대구 인근에서 재사용 화환 단속을 함께 했습니다.
화환에 '형광물질' 뿌리기 대작전



단속반은 재사용 화환을 단속할 때 '형광물질' 페인트를 이용합니다. 확실하게, 재사용 흔적을 포착해야만 과태료 부과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물증을 확보하려는 것입니다.
단속반은 장례식장, 결혼식장에 들어온 화환에 미리 분무기로 형광 페인트를 뿌립니다.
그리고 새로 들어온 화환에 'UV 특수 손전등'을 비추었을 때 형광물질이 보이면 그건 바로, 재사용 된 겁니다.
단속반은 단속을 위해 최대한 많은 화환에 뿌려놓고, 그 다음 날 확인되길 기다리는 수밖엔 없습니다.
"꽃에 형광페인트 뿌리겠다" 양해 구해도 상주들은 ‘냉담’

그러나 단속을 위해 화환에 형광 페인트를 뿌리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슬픔이 담긴 분노와 욕설을 마주하기 때문입니다. 유가족들에게 "들어온 화환을 단속할 테니 협조 부탁한다"고 일일이 허락을 맡아야 하는데 늘 냉담한 반응입니다.
"우리 사유 재산에 마음대로 뿌린다는 거 아니냐"
"안 그래도 속 시끄러운데 뭐 하는 거냐"
"필요 없으니 돌아가 달라"
상주에게 화환을 보내는 순간, 꽃의 소유는 상주입니다. 물건 주인 허락 없이는 단속이 쉽지 않습니다. 물론 유가족들도 중요한 단속 상황은 인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황없는 상태에서 단속에 선뜻 협조하겠다는 마음먹기가 어렵습니다.
어렵게 설득해 단속반의 요청을 들어준 상주는 "단속 이야기를 들었을 때 너무 당황스러웠다"며 "재사용이 암암리에 되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정작 당하고 보니 기분이 나쁘다"고 말했습니다.
서류로 단속해도…"매일 적발하기 어려워"
시간도 오래 걸리고 단속이 제대로 안 되자, 새로운 단속 기법을 발굴한 곳도 있습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북지원 단속반은 첩보 입수를 통한 '서류 단속'을 하고 있습니다. 단속반이 장례식장이나 결혼식장에서 나가는 화환 차량을 일일이 추적합니다. 화환이 많이 들어가고 나가는 꽃집 리스트를 확보해 뒀다가 그곳에 불시 점검을 나서는 방식입니다.
가장 많이 주문하는 '3단 화환'에는 생화가 3~4단 정도가 들어갑니다. 그러면 실제로 생화를 얼마나 구매해서 사용했는지, 화환이 나가고도 남은 생화의 재고량은 얼마나 되는지 등을 서류로 확인하는 겁니다. 그리고 현장에서 작업하는 과정 등을 지켜봅니다.
하지만 이렇게 단속을 하더라도 어려움은 있습니다. 꽃을 과학적으로 검증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일일이 육안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시들어가는 꽃처럼 보이더라도 바로 오늘 아침에 들어온 생화일 수도 있다는 거죠. 온전히 단속반 노하우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업무도 함께 해야 하는 단속반 입장에서 부담이 생길 수 있는 겁니다.
단속된 꽃집들 "화환 단가 못 맞춰…유통 구조 개선해야"

단속에 한 번 걸리면 과태료 300만 원, 최대 1천만 원을 받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단속을 회피하거나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에 단속반에게 걸린 불법 재사용 화환 꽃집 업체들은 대부분 빨리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단가를 맞추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변명했습니다.
예를 들어 5만 원짜리 화환을 온라인 업체에서 주문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러면 온라인 업체는 화환을 만드는 꽃집에 3만 원짜리로 제작하라고 요청합니다. 꽃집은 꽃값과 함께 배송비와 화환 자재비 등 부대비용도 감당해야 합니다. 단돈 1천 원이라도 남기려면 꽃집이 돈을 벌 수 있는 가장 쉬운 선택은 '재사용'이라는 겁니다.
"10만 원짜리 화환이라면 굳이 다른 사람 장례식장 들어간 화환을 가져올 이유가 없다"
"3만 원짜리 화환은 전부 재사용이라고 봐도 된다"
이런 말이 나오는 거죠. 그러면서 "유통 과정을 개선하지 않고 단속만 하면 꽃집 업체만 죽이는 꼴"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재사용 화환대신 조화 화환 늘어

꽃집 얘기가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전문가들도 '재사용 화환 표시제'가 본래 취지를 잃었다고 말합니다. 이애경 단국대 환경원예학과 교수는 "재사용 화환 표시제 이후 조화나 불법 재사용의 빈도가 늘었다"고 지적합니다.
관련 단속이 계속되자 꽃집에선 단속 대상인 '생화'가 아니라 '조화'를 더 많이 사용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2~3일 활용되는 장례식장과 달리 2시간 남짓 쓰이는 결혼식장 화환은 대부분 조화입니다. 국내 화훼 농가를 살리기 위한 의도로 만들어진 법이 오히려 플라스틱으로 된 가짜 꽃을 더 많이 쓰게 하는 구조가 됐다는 거죠.
단속도 중요하지만, 왜곡된 현장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제도의 개선이 필요해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