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태평양 지역 12개 국가 취재진 500여 명이 싱가포르의 랜드마크 마리나 베이 샌즈에 모였다. 20, 21일 이틀 동안 디즈니의 차기 작품들을 발표하는 디즈니 콘텐츠 쇼케이스 APAC 2024를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그들의 시선은 K드라마에 쏠렸다. OTT 플랫폼 디즈니 플러스의 전환기를 이끈 '무빙'의 작가 강풀의 신작 '조명가게'를 필두로 한국 콘텐츠들이 10개나 발표됐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이 대다수인 일본 콘텐츠 8개(드라마 1편, 예능 1편)와 비교하면 절반 이상이 K드라마였던 것이다.
아태지역 오리지널 콘텐츠 기자간담회 모두 5개의 한국 콘텐츠에 대한 것으로 한국 배우들과 연출자들이 참여했다. 이들이 등장할 때 싱가포르, 일본, 중국, 홍콩, 대만,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베트남, 호주의 취재진과 인플루언서들 상당수가 가감없이 박수치고 소리 지르며 환호했다.
태국에서 K콘텐츠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서프 컨카문 리라 와차 라꾼은 "태국에서 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정말 유명하다"며 "독창적인 스토리 라인과 열정적인 배우들 때문"이라고 평했다. '무빙'을 예로 들며 "많은 톱 스타들이 출연하며 이야기를 만드는 방식이 좋다. 액션과 가족 이야기, 판타지가 모두 들어있다"고 호평했다. 홍콩의 방송 진행자 레니 라이는 "현실에선 보기 어려운 아름다운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가 매우 로맨틱하다"고 말했다.
한 세기를 넘어선 디즈니의 상징 미키 마우스가 무대에 올라 한국의 톱스타·제작진과 하이파이브하며 기념 촬영하는 모습(사진=디즈니)은 세계적 콘텐츠 그룹 디즈니와의 강력한 파트너십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일각에선 국내 드라마 제작 생태계의 붕괴를 우려한다. 배우와 감독의 몸값이 뛰고, 제작비의 상승으로 이어져 수익을 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제작비 상승은 한류와 함께 이들 창작자들의 시장 가치 상승과 함께 수반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한류 세계화의 시초로 꼽히는 '난타'의 제작자 송승환은 비언어극에 마당놀이 개념을 접목해 세계 시장의 문을 열었고, 박진영 JYP 대표 프로듀서는 아티스트들의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 뉴욕 법인을 설립하는 현지화 전략을 세웠다.
글로벌 OTT에서 K콘텐츠의 위상이 증명됐다는 것은 다른 플랫폼을 통해서도 해외 시장 진출과 지식재산권을 활용한 2차 상품화가 가능해졌다는 뜻이다.
'대장금', '겨울연가', '모래시계'의 성공을 반추해보자. 매체의 다양화로 90-2000년대의 시청률 50-60%를 넘는 드라마의 탄생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졌지만, 대세가 된 외주 제작으로 자체 기획이 아닌 단순 중계 기능만 하며 기회의 문들을 놓치고 있던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높아진 제작비용과 글로벌 OTT의 마케팅을 침공으로 바라볼 때가 아니라, 창작자와 소재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독창적 기획으로 판로 다변화와 매출 증대를 모색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캐롤 초이 월트디즈니 아태지역 오리지널 콘텐츠 전략 총괄은 한국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최고의 콘텐츠를 선별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캐롤 초이 총괄은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2024 국제 OTT 포럼'에서도 기조 연설을 통해 "한국은 K팝과 K드라마를 무기로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허브로 성장했다"며 "계속 같이 가고 싶다"고 강조했다.
넷플릭스와 디즈니+는 플랫폼이다. 시청자들에게 어떤 플랫폼인지 어떤 방송 매체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K콘텐츠를 시청한 이들의 머릿속엔 한국의 문화가 남는다. 정부도 한류의 지속 성장을 위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지원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물을 주지 않고 과실만 따먹을 셈인가.
(싱가포르=채널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