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여기는 동아방송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찾아 개국의 첫 인사를 드리게 됐습니다.”
1963년 4월 25일 오전 5시 반. 동아방송이 그 첫 시작을 알립니다.
‘안녕하십니까, 구봉서입니다’, ‘유쾌한 응접실.’
숱한 인기 프로그램을 낳으며 라디오방송의 전성시대를 연 동아방송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다름 아닌 뉴스였습니다.
“어떤 신문사도 방송을 안 할 때거든요. 그런데 최대 일간지의 하나인 동아일보사가 방송을 냈다, 그 기대가 대단했습니다.”
기존 라디오 뉴스가 ‘귀로 듣는 신문’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면, 동아방송 뉴스는 처음으로 방송뉴스만의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개척합니다.
국내 방송사상 처음으로 시그널 음악과 뉴스 진행을 주도하는 앵커를 도입하고, 뉴스 첫머리 그날의 뉴스를 간략히 정리하는 헤드라인 코너도 처음 만들었습니다.
뉴스 편성 회수와 청취율에서도 타 방송사를 압도했습니다.
“서울·경기 일원만 들리는데, 공보부 전국 (청취율) 조사에서 1등을 했습니다. 이건 우리도 깜짝 놀랐어요. 서울에서는 물론이고.”
관보에 지나지 않았던 기존 방송뉴스와 달리, 사회속보와 현장중계, 심층뉴스를 늘려 뉴스 내용에도 획기적인 변화를 줬습니다.
늘 빠르고, 정확하고, 생생한 동아방송의 뉴스는 언론보도의 역사로 남았습니다.
“네.” “(지금 어때요?)네?” “(답답하지 않아요?)네, 괜찮습니다.”
“자수해도 이제 죽이고 안해도 죽인다, 이러기 때문에 산에서 돌아다니다가 저는…”
“복도에서 비상구로 나가려니까 연기가 확 들어와서 도저히 불가능해요.”
기자들이 직접 만든 각종 리포트 프로그램들도 남다른 취재와 기획력으로 청취자들의 귀를 사로잡았습니다.
특히 20분짜리 ‘DBS리포트’는 오늘날 많은 TV 시사교양프로그램의 효시가 됐습니다.
“일종의 보도지만 해설을 넣어서 논평을 하는, 그런 차원에서 보도저널리즘의 새로운 기원이었다…”
올바른 보도에 앞장선 만큼, 군사정권의 감시와 통제는 엄혹했습니다.
사회만평프로그램 ‘앵무새’의 기자 6명이 구속기소 된 ‘앵무새 사건’을 시작으로 정부는 동아방송과 기자에 대한 탄압을 계속했습니다.
“군사정부 입장에서는 혁명과정에서 방해가 되고 충돌이 생기니까… (기자들이) 재판 받고 수갑 차고 방송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을 겪죠.”
1980년 제5공화국이 친여매체 중심, 1도 1사 원칙의 통폐합을 골자로 한 언론통폐합 조치를 발표하면서 동아방송은 결국 KBS에 강제 흡수통합됩니다.
“저희 동아방송 200명 직원의 마음을 엮어 아나운서 이숙영, 송지헌이 대신 전해드렸습니다.”
동아방송이 마지막 뉴스를 송신했던 바로 그 자리, 꼭 31년 만에 이제 TV 뉴스가 새 닻을 올립니다.
“신문사의 취재력과 노하우, 오래 축적된 자료를 바탕으로 해서 채널A의 현장에 밀착된 취재가 결합이 돼서 좋은 공정한 보도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기존 뉴스의 패러다임을 깨는 도전정신, 90년 보도 전통의 현장성과 기동력, DBS리포트의 취재력과 깊이를 담아 시청자들 앞에 선보입니다.
채널A 뉴스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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