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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현장]인정받지 못한 ‘노다이’ 항일운동, 명예회복은 언제쯤…

2013-03-01 00:00 사회,사회

[앵커멘트]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 학교와
한국인 학교가 동시에 참여한
군사훈련 대회에서 편파판정이 계속되자
한국 학생들이 거리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때 일본군 장교의 집을
습격한 이른바 '노다이 사건'이 있었는데요,
이때 옥고를 치른 일부 학생들이
아직도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산일보 박진숙 기자입니다.


[리포트]
1940년 11월 23일,
부산에서는 일본인 학교와 한국인 학교가 참가한
모의군사훈련대회가 열렸습니다.

그러내 대회가 편파판정으로 일관하자
부산상고와 동래고 학생 천 여명이
거리시위를 벌였습니다.

거리에 나선 학생들은 당시 심판장을 맡았던
노다이 육군대좌의 관저까지 습격했습니다.

[인터뷰: 안경하/광복회 부산시지부장]
"천 여명이라면 전교생이 다 참여했다고 봐야합니다.
광주학생운동 이후 전국적으로 제일 규모가 큽니다."

이 '노다이 사건' 때문에 학생 200명이 체포됐고,
이 중 15명이 구속돼 옥고를 치뤘습니다.

그러나 15명 중 8명만 국가 서훈을 받았고
나머지는 국가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당시 옥고를 치은 이인회 선생의 조카손자
이상국씨는 할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매일신보 등 신문기사와 학적부를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5월 이인회 선생을 포함한
7명의 국가 유공자신청을 했지만 선정되지 못했습니다.

[인터뷰: 이상국/노다이 사건 참가자 유족]
"부산 경남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 겨우 8명으로
서훈이 끝난다는 것은 아주 잘못됐다는 거죠."

이 씨는 할아버지의 희생을 제대로 평가받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부산일보 박진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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