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멘트]
촉망받는 톱 투수였던 조성민 씨는
절정의 인기와
날개없는 추락을 함께 맛봤던
비운의 스타였습니다.
풍운아 조성민의 일생을
장치혁 기자가 되돌아봤습니다.
[리포트]
조성민은 신일고 시절부터 194센치에서
내려꽂는 강속구와 제구력을 자랑하는
초고교급 투수였습니다.
고려대 시절엔 박찬호, 임선동과 함께
92학번 트로이카로 불렸습니다.
타고난 실력에 귀공자풍의 외모까지,
조성민은 96년 일본 최고인기 구단 요미우리에 입단했고
2000년 최진실과의 결혼은 숱한 화제를 뿌렸습니다.
하지만 전성기는 그리 길지 못 했습니다.
팔꿈치 수술의 여파로 2002년 요미우리를 떠났습니다.
덩달아 결혼생활도 2004년 파경을 맞았습니다.
조성민은 우여곡절 끝에 이듬해 한화에 입단해
다시 마운드에 섰습니다.
2007년까지 3승 4패, 평균자책점 5.09,
초라하게 선수생활을 마감했지만
결국 그가 있어야 할 곳은 그라운드였습니다.
방송 해설가로 활동하다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두산의 코치를 맡았습니다.
하지만 계약은 종료됐고
폭행사건에 연루돼 다시 한 번 자존심에
상처가 났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예전 같지 않았고
기약 없는 미래도 고인을 더 불안하게 했습니다.
(싱크 / 조성민)
"코칭스태프 변경이 있으면서
제가 나오게 됐습니다. 웃을 일은 아니죠.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 건지..."
굴곡 많은 삷을 살며 재기와 새 출발을 거듭한
'풍운아' 조성민.
끝내 꽃을 피우지 못한 채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채널A 뉴스 장치혁입니다.
Copyright Ⓒ 채널A.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