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멘트]
4대째 한국에 터를 잡고 살고 있는
미국인 인요한 박사가
드디어 한국 국적을 갖게 됐습니다.
우리 나라 응급 의료 발전에
평생을 바쳐온 인 박사를,
홍석원 기자가 만났습니다.
[리포트]
큰 키에 금발, 푸른 눈의 인요한 박사는
스스로를 '순천 촌놈'이라고 부릅니다.
117년전 외조부 유진 벨씨가 터를 잡은 이래
4대째 한국에 살고 있습니다.
인 박사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풍경은
여느 한국인과 다르지 않습니다.
[인터뷰 : 인요한 박사]
"제기차기 하고 팽이치기 하고 뙈기따먹기하고.
어렸을 때 그 생각이 많이 나요."
정식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하게 된 인 박사는
기대로 가득했습니다.
[인터뷰 : 인요한 박사]
"(국적을 물어볼 때) '나는 전라도사람입니다' 이렇게 답변했는데
이제 완벽하게 마지막 걸음을 걸어서 한국인이 되는 날입니다."
법무부는 인 박사의 가족이
4대째 한국의 교육과 의료 분야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특별 귀화를 허가했습니다.
인 박사는
한국형 구급차 개발과
북한 결핵 퇴치 운동의 성과를 인정받아
2005년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젊은 시절,
인 박사는 굴곡진 한국사의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1980년 5월,
광주의 한 복판에 있었던 겁니다.
[인터뷰 : 인요한 박사]
"그때 도청 3층에서 통역해가지고, 데모 주동했다고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나가달라고 5공화국에서 미 대사관으로 편지가.."
아버지를 잃은 아픔이
응급의료의 체계를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 인요한 박사]
"(사고를 당하신 뒤에) 택시 안에서 운명하셨어요.
그게 가슴에 상처가 돼서 92년도부터 구급차를 개발하고…."
이제 조국이 된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쓴소리도 잊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 인요한 박사]
"외국에 있는 나쁜 것은 빨리 배워 와요.
그리고 반영이 되는 것 같고. 특히 젊은 세대가."
[현장음]
(한국 하고 미국 하고 축구할 때 어느 편 응원하세요?)
"당연히 한국을 응원하죠. 그거는 예전부터 그랬는데..."
“이렇게 반갑게 받아줘서 정말 고맙네잉~”
채널A 뉴스 홍석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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