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멘트]
(남)1년 전 박원순 서울시장은
당장 철거해야 할 재해위험시설 주민들을 찾았습니다.
박 시장은 그 자리에서 반드시
예산을 책정해 이주대책을 세우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여)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지금도 붕괴의 위험 속에 방치된 채
추위에 떨고 있는 주민들이 있습니다.
어제와 오늘, 27년 만에 찾아 온 혹한 속에
김관, 배혜림 두 기자가 그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여기는 서울 용산구 갈월동의 한 주택입니다.
겉보이기에도 허름해 보이는데 밖에는 노란 표지판이 붙어 있습니다.
저희 카메라가 찍고 있는데
'재난 위험시설'이라는 표지판입니다.
정밀안전진단 결과 작은 충격에도
시설이 붕괴될 수 있는 위험이 크다는 얘깁니다.
서울에만 이런 곳이 총 38군데 있습니다.
그 중 제가 나와있는 이 주택처럼
아직 주민들이 살고 있는 곳이 6군데나 됩니다
겨울이면 더 힘들어질텐데
어떤 환경과 여건에서 살고 계신지 한번 들어가보겠습니다.
1층 입구 들어오자마자
가장 눈에 띄는 건 천정입니다.
콘크리트가 다 벗겨저 내려와서
안에 있는 철근이 부식되고 녹슨 게 보입니다.
이쪽으로 와보시죠.
몇 년 전 사고로 숨진 주민이 살던 곳인데
그때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서
보는 사람이 섬뜩한 느낌까지 들 정도입니다.
그 위에는 온갖 전선과 배선들이 이렇게 얼기설기 꼬여있는데요.
특히 비가 오거나 습기찬 계절에는 더욱 합선 위험이 커보입니다.
2층으로 올라가 보겠습니다.
중간에 벽면이 뻥 뚤려서 찬 공기가 내부로 다 들어오고 있습니다.
복도인데도 입김이 나올 정도로 추운 공기가 가득 차있습니다.
좁은 복도를 지나서 한 주민 집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어머니 또 왔습니다.)
내부가 보이실텐데 상당히 비좁습니다.
이곳에서 60년 넘게 사는 이 주민 분의 나이가
이제 94세가 되셨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미리 가져온 온도계로
내부 온도를 측정해봤더니 영하 8.8입니다.
거의 영하 9도 가까이 되는데
어느 정도냐 하면 이렇게 밖에 내놓은 물이
다 얼어버릴 정도입니다.
나이 많은 주민이 살기에는 힘든 여건입니다.
이번엔 다른 공간으로 이동해보겠습니다.
이곳 주민들이 38가구, 41명 주민들 살고 있는데
여기 있는 공동 화장실을 같이 쓰십니다.
겨우 3군데 밖에 없는데 냄새가 굉장히 심합니다.
옛날 재래식 화장실 형태 쓰고 있는데
문제는 이쪽에 있는 식수대입니다.
41명 주민들이 밥먹거나 세수하려고 씻을 때 쓰는 유일한
식수대인데 식수대가 저 화장실과 2미터도 떨어져있지 않습니다. 당연히 비위생적입니다.
반대편으로 가보겠습니다.
여기는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입니다.
여기저기서 물이 흘러나와서 다 얼어버렸습니다.
이렇게 미끄러운데 저같으 젊은 사람이 걸어올라다니기에도 굉장히 미끄럽습니다.
여기 주민들 대부분이 7~80대 많게는 90대 어르신들인데
그렇게 때문에 낙상 위험 큽니다.
이곳 3층에는 옥상으로 올라가는 오르막 길이 있습니다.
세탁물 건조하거나 빨래를 한 다음에 세탁물 너는 곳인데
겨우 이런 지지대 2개만이 위를 버티고 있습습니다.
애당초 있던 철근들이 떨어져나가고 부식돼
당장 제 머리 위로도 떨어질 정도입니다.
만약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 써야할 소화기 보시죠.
92년도 제조된 건데 녹슬고 저희가 한번 사용해보려 했는데
작동이 안 됩니다.
자 이제 옥상입니다.
좁은 게 위험해서 떨어질 위험도 있는데
이 옥상엔 주민들 세탁물이 조금 있고 올 겨울 드시려고 걸어놓은 황태가 몇개 보입니다.
제가 여기 직접 와보니 1층부터 옥상까지 전부 다 위험지대입니다.
게다가 옥상에 쌓인 눈까지도 그 무게가 붕괴 위험요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 건물이 위험시설로 지정된 게 13년째인데
서울시는 매년 이주해라 대피해라는 이주명령만 할 뿐,
정작 주민들을 위해해 제공될 이주보상금은 단 한푼도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이곳 주민들, 제대로 좋은 곳으로 나갈
엄두조차 못 내고 있는 현실입니다.
채널A뉴스 김관입니다.
[리포트]
자, 그렇다면 재난 위험 주택으로 분류된 E등급 아파트에서의 삶은 어떨까요?
이곳 성북구 정릉동의 아파트에서 제가 직접 하룻밤을 지내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들어가겠습니다.)
집안에 들어서자 눈에 들어오는 거미줄.
칼바람을 막아줘야 할 창문 대신 비닐막이 쳐져 있습니다.
곰팡이는 벽지를 다 갉아먹었습니다.
어른 한 명이 들어가 서 있기도 비좁은 화장실.
앉아 있기도 서 있기도 힘이 듭니다.
세수물은 얼음장처럼 차갑습니다.
(얼굴이 얼어붙는 것 같아요.. 하아)
유리창에는 차디 찬 얼음꽃이 피었습니다.
(유리 표면이 얼었습니다. 긁어지지도 않는데요?)
기름값 걱정 때문에 보일러는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바닥이 너무 차갑다.. 추워)
깊게 패인 균열들.
집이 곧 무너져내리는 건 아닌지 걱정부터 앞섭니다.
잠깐 노트북을 켜고 기사를 쓰는 사이에도 손은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새벽 한 시, E등급 주택에서 잠자리.
어둠 속에 들어가자 한기와 공포가 두 배로 느껴집니다.
목도리까지 칭칭 감아 보지만, 찬 기운이 가시지 않아 머리 끝까지 이불을 뒤집어 씁니다.
[아침]
(새벽에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는지 꽁꽁 얼어붙었네..)
집주인 78살 할머니는 왜 혼자 남아 이렇게 위험천만한 생활을 하고 계신 것일까.
[인터뷰: 노복순 씨]
"(기름) 한 드럼, 두 드럼으로 겨울 나려면 얼어죽어요, 얼어죽어. 새로나온 시장도 없는 사람들 해결해 준다고 했는데 말도 안 하고 쳐다도 안 보고."
노 할머니는 집을 보유하고 있어 임대주택 입주가 어렵습니다.
보상도 없이 집에서 쫓겨나는 건 더욱 억울한 노릇입니다.
[인터뷰: 이호승 전국철거민협의회 상임대표]
"사업을 주관하고 있는 시청이나 구청에서 영세 가옥주에게도 임대주택이나 전세주택같은 주택을 제공하면 대책이 수립된다 이렇게 봅니다."
구청 관계자는 몇 년 째 '나 몰라라'입니다.
[전화녹취: 성북구청 주택관리과 직원]
"그건 저희 담당자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요, 법대로만 얘기하면 과태료나 벌금을 하는 게 순서겠죠 근데 그게 안 되잖아요. 성북구 주택관리과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이주 독촉밖에 없어요."
국민에게 주거권을 보장해주는 것은 국가의 책무입니다.
조그만 보금자리라도 마련해달라는 목소리에 무관심한 사이,
이곳 주민들은 추위와 붕괴의 위험 속에서
목숨을 걸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채널A 뉴스 배혜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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