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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A/다큐리포트]발레하는 노숙인

2011-12-29 00:00 사회,사회

발레 한번 본 적 없던 이가
호두까기 인형의 무대에 올랐습니다.

어떤 사연이 그를
무대로 이끈 걸까요.

이설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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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이 오르자 경쾌한 음악이 주인공들을 불러옵니다.

시작은 파티 장면.

꼬마 발레리나들이 가벼운 몸짓으로 춤을 춥니다.

그들 사이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남성이 눈에 들어옵니다.

다소 어설프지만
파트너와 열심히 호흡을 맞춥니다.

임진희 씨는 노숙인 자활잡지 빅이슈를 파는
빅이슈 판매원, 줄여 말해 ‘빅판’입니다.

매일 아침 사무실에 들러 잡지를 챙깁니다.

“거의 매일 들르죠. 그 날 그 날 팔 거 주문하고.”

정성스레 비닐에 잡지를 넣고
서비스로 내 줄 사탕까지 챙기면 출동 완료.

씩씩한 발걸음으로
안암역 2번 출구를 향해 길을 나섭니다.

“백구야. 그렇게 반가워?”
“많이 파시고요. 좋은 하루 되세요.”

길목에서 마주치는 모든 이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저도 낯을 많이 가려가지고.
사람들하고 인사하는 게 없었어요.
판매하면서부터 계속 인사하게 되더라고요.”

노련한 손놀림으로 좌판을 펼치고
목청을 가다듬습니다.

“희망의 잡지 신간 나왔습니다.”

한 시간을 기다려 맞이한 고객.

[김혜주/ 23세, 대학생]
“자활하려고 하시는 거잖아요.
솔직히 아예 구걸하는 것도
나쁘다고 생각 안하잖아요.
구걸 하시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하거든요.”

판매하는 틈틈이 주변 정리도 하고
가까이서 일하는 이웃들도 챙깁니다.

“아저씨, 잘 쉬셨어요?”(임진희)
“항상 친절하게 하니까 덩달아서 친절하게 돼요.”(환경 미화원)

어느새 어스름이 내려앉고.

임 씨는 네온사인을 조명삼아
흥을 돋웁니다.

빅이슈를 만나기 전 임 씨는
10년 가까이 거리생활을 했습니다.

부인과 두 자녀가 교통사고로
동시에 세상을 떠난 뒤 홀로 남은 임씨.

어려서부터 고아원 생활을 하다가
어렵게 꾸린 가정이라 충격이 더 컸습니다.

“사고 나면서 한참 방황했어요.”
“애기들은 몇 살이었어요?”
“그때 세 살, 다섯 살이었으니까 살아 있었으면 고등학생이겠죠.”

그는 1년 가까이 매주 일요일마다
발레를 배우고 있습니다.

서울발레시어터 제임스 전이
재능기부 형식으로 빅판들에게 발레를 가르칩니다.

[제임스 전/ 서울발레시어터 상임 안무가]
“그분들 참 순수하세요. 서로 인생의 친구가 된 거죠.”

작은 시작이었지만 꾸준한 연습 끝에
정식 단원으로 무대에 섰습니다.

임 씨의 꿈은 커피 전문점을 여는 것.

"인테리어 다시 하려면 최소한 2억."
"내가 환갑 지날 때쯤 그럴 수도 있어요."

고된 일상이지만
임씨는 꿈이 있어 지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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