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멘트]
1.
1895년 10월 8일.
일본 낭인들의 칼날에 스러지면서도
"나는 조선의 국모다"를 외쳤던
비운의 왕비.
우리가 알고 있는
명성황후 최후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그런데...
알려진 것과 달리
명성황후가 이 을미사변 때
시해되지 않고 피신해
생존했다는 내용이 담긴
외교문서가 발견됐습니다.
사실일까요?
2.
이 문서를 발견한 사람은
정상수 한국방송통신대 교수입니다.
정교수는 독일의 제국주의에 대한
박사논문을 준비하던 1993년,
그러니까 20년 전이죠,
이 때부터 독일 외교부
정치문서 보관소를 드나들었는데요,
3.
그러다 2011년 9월
이 문서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는 독일 외교부
정치문서보관소에 있던
라돌린 보고서,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영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찾은
힐리어 보고서입니다.
이 문서들에 과연
어떤 내용이 적혀있었을까요.
4.
먼저 러시아 주재 독일대사였던
후고 라돌린이 작성해
라돌린 문서라 불리는
보고서부터 보시죠.
오른쪽 위의
6/2 96이란 숫자는
작성날짜를 말합니다.
독일에선 날짜를 이렇게 쓴다는데,
1896년 2월 6일을 뜻합니다.
을미사변이 1895년 10월에
있었으니 약 4개월 뒤의 글이죠.
왼쪽 파란색 밑줄은
독어 postziff라는 글자라는데
우편으로 암호화해 보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기밀이라는 얘기죠.
5.
문서 3번째 줄과 4번째 줄을
옮겨봤습니다.
해석해보면
"죽었다고 이야기되고 있는
한국의 왕비가 아직 살아있다"
라는 뜻입니다.
6.
힐리어 문서는
서울 주재 영국 총영사였던
월터 힐리어가
베이징 주재 영국 공사에게
보고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역시 마찬가지로
지명 서울과 날짜가 보이죠.
1896년 2월 15일,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긴
'아관파천'이 있는지
나흘 뒤에 쓰여진 문서입니다.
왼쪽의 '비밀'이란 뜻의
confidential은
독일문서와 마찬가지로
이 문서가 기밀문서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7.
명성황후와 관련된 문장은
세 장 뒤에 있습니다.
"The King is still unable to say
whether the Queen is alive or not"
"왕(고종)은 여전히
왕비(명성황후)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를 말하지 않고 있다"
8.
정상수 교수는
명성황후의 시신이 없다는 점,
고종이 20년 이상 재혼하지
않은 점,
그리고 이후의 독일 외교문서에서
이 문서의 내용을 수정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문서의 신뢰성을 주장합니다.
9.
학계에서는
이번 자료가 당시 외교가의
풍문 정도일 수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데요,
명성황후의 죽음과 관련된 진실,
과연 1895년 10월 8일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진실에 대한 새로운 조명,
필요해보입니다.
지금까지 강수진의 네모뉴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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