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멘트]
1937년 소련 스탈린의 명령으로
강제이주와 타향 살이 설움을 당했던
우리 동포, 까레이스키를
다들 아실 겁니다.
이번 설에 한 까레이스키 할머니가
백내장 수술을 받기 위해
한국을 찾았습니다.
할머니의 첫 고국 나들이를
이새샘 기자가 동행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침대에 누운 작은 몸.
깊게 패인 주름과 탁한 눈동자.
어린 시절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 이주당했던 까레이스키,
오가이 라이사 할머니입니다.
할머니는 10년 전부터 앓아온
백내장을 고치기 위해
난생 처음 고국을 찾았습니다.
양쪽 눈의 시력을 거의 잃은 상탭니다.
[인터뷰: 김나래 인하대병원 안과 교수]
"자외선을 차단할 수 있는 안경이나 보호장구 없이 오랫동안 (농사)일을 하셨기 때문에 백내장 진행 속도가 빨라졌을 수 있습니다."
수술이 끝나자
할머니가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입니다.
이틀 뒤 할머니는
서울 나들이에 나섰습니다.
고국에서 맞는 첫 설입니다.
옛 궁궐도 둘러본 뒤
박물관에선
고운 빛깔의 한복도 입어봅니다.
어릴 적 기억도 새삼
떠오릅니다.
[인터뷰: 오가이 라이사, 77세]
“빨래를 다 해서, 마지막에 저걸로 두드렸어.”
할머니의 설맞이 음식은 떡국.
우즈베키스탄에선
자주 먹지 못한다고 합니다.
[인터뷰: 오가이 라이사, 77세]
“우즈베키스탄에 왔을 때 집이 없지. 양들이 살던 우리를 손질하고 그러고 (살았지.)”
할머니는
한국 정부가 현지에 설립한 요양원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습니다.
[인터뷰: 오가이 라이사, 77세]
“마음이 좋수다. 내 살아서, 죽지 않고 살았으니 한국에 와서 까레아, 한국으로 귀국하오. 죽었으면 못 보지. 어째 보오. 그러니 감사하지.”
세계 평화가 새해 소원이라는 할머니.
우즈베키스탄으로 다시 돌아가도
고국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현장음]
“뜸뿍뜸뿍 뜸뿍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우네. 우리 오빠 서울에 가신 뒤에는 비단신을 사가지고 오신답니다.”
채널A 뉴스, 이새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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