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멘트]
(남) ‘특수임무수행자’라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휴전 이후 72년 7월 남북공동성명까지
북한으로 1만 명이 넘는 공작원을 보내,
7,800명을 실종 처리한 바 있습니다.
(여) 북파공작원은 계급과 군번이 없다고 합니다.
과거에는 북파공작원들의 존재조차 부정됐었죠.
뒤늦게나마 국가가 이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명예회복을 추진해 오고 있는데요.
오늘 이 분들의 이야기 들어보는 시간 마련했습니다.
(남)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 김영대 특수보좌관,
오복섭 전 사무총장, 두 분 자리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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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1.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 어떤 곳입니까?
특수임무 공작원들 규모는 어느 정도나 되나요?
2.특수임무에는 어떤 것들이 포함됩니까?
3. 직접 북한에도 다녀오셨습니까?
어느 경로를 통해? 직접 가본 북한의 모습은?
북한으로 넘어가는 것이 어렵습니까, 돌아오는 것이 어렵습니까?
4. 특수임무인 만큼 위험성이 클 텐데요.
1만 3천 명이 양성돼, 그 중 7800명이 실종, 사망 상태라고 하는데. 실태는?
5. 북파공작원이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6. 북한에 가기 전 몇 년 정도의 훈련을 받습니까?
훈련 과정은 영화 <실미도>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보면 됩니까?
인권 유린 문제도 제기됐었는데요?
<참고> ‘실미도 사건’
1971년 8월23일 인천 실미도에서 훈련을 받던 북파 특수부대원 23명이
인권 유린과 열악한 보급, 대우 등에 불만을 품고 부대장과 교관 등 17명을 죽인 뒤 인천 송도에서 버스를 빼앗아 타고 서울 대방동까지 진출. 출동한 군·경과 교전끝에 버스안에서 수류탄으로 자폭해 15명이,
군·경의 응사로 2명이 숨졌으며 6명이 다쳤다.
부상자 중 2명은 그 뒤 병원에서 사망했고 4명은 군사재판을 거쳐 총살돼 모두 죽음으로 최후를 맞이했다.
7. 대한민국에서는 최근까지도 북파공작원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었는데요.
그렇다면 그동안 공식적인 신분은 무엇이었습니까?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공작원들의 경우, 신분을 감추어야 할 텐데요.
가족들조차 모르나요?
8. 이렇게 국가를 위한 특별한 희생이 요구되는 임무를 수행해 왔던 공작원들에게 국가는 어느 정도의 보상과 대우를 해 왔습니까?
9. 부상자나 유공자들, 그 가족들에게는 국가에서 책임지고 적절한 보상을 하고 있습니까? 현재 특수임무 유공자는 얼마나 됩니까?
10. 특수임무 출신들은 사회에 나왔을 때 어떤 대우를 받게 되나요?
11. 도중에 그만두게 될 경우엔 가족에게 말할 수 있습니까?
새로 취업할 직장에 경력 표기는 어떻게 할 수 있나요?
12. 북파공작원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어떻다고 체감되십니까?
13. 우리 정부와 사회에 요청할 것은?
14. 최근 북한의 도발 위협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바라보고 계십니까?
15. 남한 내 친북, 종북 세력에 대한 입장은?
16. 특수임무유공자회가 앞으로도 이 사회에 기여하실 것들이 있다고 보여지는데요. 어떤 역할 하실 수 있겠습니까?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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